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시작된 ‘죽을 고비’의 예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는 말은 흔히 과장된 표현으로 들리지만, 이 화가에게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는 폐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연쇄 공격으로 생의 기반인 숨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경험을 했다. 기침 한 번, 숨 한 번이 비명처럼 느껴지는 시기를 통과하며, 그는 단지 작품 활동을 중단한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일”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했다. 그가 5년 전 붓을 놓았던 순간은 예술가로서의 휴지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는 절체절명의 시간이었다.
폐암 진단은 그에게 신체적 고통을 넘어, 예술 인생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그가 축적해 온 작업, 전시, 평단의 평가와 같은 외적인 성취는 병실의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 모두 색을 잃었다. 의사의 설명은 의학적 용어로 채워졌지만, 그의 귀에는 “남은 시간”에 대한 암시로만 들렸다. 이때부터 예술은 미래의 계획이 아닌, 과거의 회상으로 바뀌었다. 그는 “다음 작품”을 고민하던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죽을 고비’라는 표현은 단지 병의 중증도를 드러내는 말이 아니라, 예술가의 정체성이 완전히 흔들린 경험을 상징한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시간 동안 그의 삶은 철저히 의료 시스템의 리듬에 종속됐다. 수술 일정, 항암 치료, 각종 검사와 수치가 하루의 감정을 결정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한 약물은 의식과 감각을 흐리게 만들었고, 미세한 손 떨림과 호흡의 불안정은 섬세한 선을 요구하는 회화 작업을 불가능하게 했다. 예술가로서의 손과 눈, 호흡은 그에게 생업의 도구이자 자기 표현의 통로였지만, 질병은 그 모든 것을 차례로 빼앗아 갔다. 그에게 붓을 내려놓는 일은 곧 자신을 내려놓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예술가의 삶이 얼마나 육체에 깊이 의존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종종 예술은 순수한 정신의 산물로만 이야기되지만, 실제로는 손끝의 힘, 눈의 초점, 호흡의 리듬 같은 물리적 조건이 조금만 흔들려도 유지되기 어렵다. 특히 암이라는 질병은 예술가의 정신력까지 시험하며, “창작의지”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함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러나 그가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자, 역설적으로 예술에 대한 감각은 더욱 예민해졌다.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색조, 생과 죽음의 경계에서만 보이는 명암이 그의 기억 속에 쌓여 갔다. 비록 당장 붓을 들 수는 없어도, 그는 병실 천장에 비치는 빛의 각도, 새벽의 공기, 링거 줄에 맺힌 작은 물방울들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포착했다. 그 모든 것이 언젠가 다시 그려질지도 모를 “미래의 그림”의 재료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는 완전히 예술을 떠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술을 축적하고 있었던 셈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예술가의 서사는 자칫 영웅담처럼 소비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 과정이 훨씬 더 지리하고 불완전하다. 그는 수차례 체력 저하와 호전, 다시 악화를 반복하며 심리적으로도 큰 기복을 겪었다. 어떤 날은 숨이 차서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고, 어떤 날은 잠시 회복된 기운에 괜스레 희망을 품었다가 다음 진단 결과에 다시 주저앉았다. 이 과정에서 “다시는 붓을 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인정과 “언젠가 한 번은 다시 그려 보고 싶다”는 미련이 그의 마음속에서 번갈아가며 부딪혔다.
흥미로운 점은, 그런 갈등과 기다림의 기간이야말로 예술가의 내면을 다시 짜 맞추는 시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죽음의 가능성을 체감한 이후, 이전까지의 작업을 관통하던 강박과 경쟁 의식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전시 일정, 판매 성과, 평론의 반응 등 외부 세계의 평가가 더 이상 결정적인 기준이 되지 못했다. 대신 “내가 정말 그리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지금 이 순간의 숨”을 작품 속에 어떻게 옮길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떠올랐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는 예술의 방향을 생존의 논리에서 존재의 본질로 서서히 돌려 세우고 있었다.
이처럼 ‘죽을 고비’는 그에게 단순한 위기가 아니라, 예술 인생의 재정의 과정이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심각한 병이나 사고 이후 작품 세계에 극적인 변화를 겪는 경우가 많다. 주제는 더욱 압축되고, 표현은 보다 절실해지며, 형식은 군더더기가 없어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그의 경우에도 폐암이라는 구체적 진단명과 호흡 곤란이라는 경험이 이후 작품의 색채, 화면 구성, 여백 처리에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죽을 고비를 건너온 예술은 종종 관객에게도 “살아 있음”의 감각을 강렬하게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그의 향후 작업은 단지 개인의 회복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울림을 제공할 수 있다.
붓을 놓았던 5년, ‘붓’과 함께 사라진 정체성
그가 “붓을 놓았다”는 순간은 단순한 작업 중단이 아닌 정체성의 붕괴를 의미했다. 평생 스스로를 화가로 규정해 온 사람에게 붓은 곧 이름표이자 자기 소개였다. 그러나 병실에 누워 수개월, 수년을 보내는 동안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직업을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작업도, 예정된 전시도 없었기에,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점차 “예전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으로 회상하게 됐다. 이처럼 붓을 놓는 일은 생계의 단절만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설명할 언어가 사라지는 경험을 동반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예술가에게 치명적으로 길다. 유행이 바뀌고, 미술계의 흐름이 달라지고,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등장하는 데 충분한 기간이다. 그가 붓을 내려놓고 있는 사이, 동료 작가들은 계속해서 개인전을 열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국제적인 아트페어에 진출했다. 반면 그의 이름은 점차 기사에서, 비평에서, 전시 포스터에서 지워졌다. 이 지워짐의 감각은 육체의 고통과는 또 다른 차원의 상실로 다가왔다. 그는 생존을 위해 병과 싸우는 동시에, “잊혀짐”과 싸워야 했다.
붓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호흡의 불안정과 체력 저하였다. 세밀한 붓질은 일정한 호흡과 근력이 필요하지만, 폐암의 진행과 치료 과정은 이 단순한 조건마저 빼앗아 갔다. 팔을 잠시만 들어도 숨이 찼고, 집중을 유지하려 하면 곧바로 피로가 몰려왔다. 항암 치료의 후유증은 손끝의 감각과 근육의 반응 속도를 떨어뜨려, 직선 하나를 긋는 일조차 이전처럼 쉽지 않게 만들었다. 화폭 앞에 앉아 있어도, 한동안 그는 그저 빈 캔버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결국 그는 스스로 받아들였다. “지금은 붓을 들 수 없는 시간”임을.
개인적으로 이 지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붓을 놓는 결정을 스스로 내렸다는 사실이다. 의사나 가족의 강요가 아니라, 자기 몸의 한계를 인식한 끝에, 예술과 생존 사이의 우선순위를 선택한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끝까지 작업을 고집하다가 오히려 회복의 기회를 잃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는,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에 잠시 예술을 내려놓는 길을 택한 셈이다.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 모순을 감당해 낸 태도가야말로 그의 예술을 더 깊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붓을 내려놓은 5년 동안, 그는 대신 ‘관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병실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계절, 병원 복도의 빛의 변화, 환자와 보호자들의 표정, 의료진의 손놀림 같은 장면들이 그에게는 새로운 스케치가 되었다. 노트에 직접 그리지는 못했지만,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장면을 수집하고 편집했다. 이전까지 그는 의식적으로 피사체를 선택하고 화면을 구성했지만, 이 시기에는 주어진 환경을 그저 받아들이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마음속으로 기록해 나갔다. 이 ‘비가시적 기록’은 훗날 다시 붓을 잡았을 때, 작품의 근저에 깔린 깊은 정서로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그는 과거 작품들을 일일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작업 노트와 도록, 전시 사진을 하나씩 펼쳐 보며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조용히 점검했다. 초기에는 기교와 실험에 치중했던 화면이 점차 절제와 여백의 미로 이동해 온 흐름을 스스로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보여 주기 위한 회화”를 그려 왔다는 사실을. 관객과 평단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며, 자신의 내면보다 외부의 기준에 맞추려 했던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붓을 놓은 5년은 그래서, 단지 공백기가 아니라 미완의 작업들을 마음속에서 다시 편집하고 재해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 시기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도 씨름해야 했다. 일부는 그에게 완전한 은퇴를 권유했고, 일부는 “이제 편히 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다시 붓을 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다. 의료진은 건강 관리에만 집중할 것을 당부했고, 가족들 역시 무리한 시도를 걱정했다. 그는 이런 조언들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여전히 “언젠가 다시 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씨를 간직했다. 하지만 그 불씨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다. 번번이 좌절을 맛본 이후라, 무모한 희망을 말로 꺼내는 일조차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예술가의 정체성이 단지 ‘창작 행위’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붓을 들지 못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기억하고, 관찰했다. 이 보이지 않는 활동들은 실제 작품으로 환원되기 전까지는 아무런 성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예술의 내적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핵심적인 과정이다. 5년간의 정지는 그래서 외형적인 멈춤일 뿐, 내면에서는 거대한 재구성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붓을 놓았다”는 표현은 불가피한 현실을 말해 주는 동시에, 언젠가 다시 “붓을 드는 순간”을 위한 침묵의 준비 기간이기도 했다.
결국 그는 어느 날, 극적으로 무언가가 좋아져서가 아니라, 아주 조심스럽고 느린 속도로 다시 붓을 잡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짧은 선 몇 개, 작은 스케치 한 장뿐이었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었고, 작품 한 점을 마무리하는 데 이전보다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붓을 내려놓았던 5년의 공백은, 그가 다시 붓을 들었을 때 전혀 다른 각도에서 세계를 바라보게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이 시기를 통과하지 않았다면 도달할 수 없었을 깊이와 절제, 그리고 생에 대한 겸손함이 그의 새로운 작업들에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붓을 놓았던 시간은 비극이자 동시에 축복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호흡을 되찾으며, 삶과 예술의 ‘호흡’도 바뀌다
폐암과 여러 질병이 그의 호흡을 짓눌렀을 때, 그는 단지 숨이 가빠지는 신체적 증상만 겪은 것이 아니었다. 호흡의 불안정은 그의 일상 리듬, 나아가 예술적 리듬 전체를 무너뜨렸다. 예전에는 한 호흡에 긴 선을 그으며 화면 전체를 휘감는 구성을 즐겼다면, 병 이후에는 몇 초간의 숨 참기가 곧 탈진으로 이어졌다. 그림은커녕 짧은 대화를 이어 가는 일도 버거운 날이 이어졌다. 그가 “그림은커녕 …”이라고 말을 잇지 못했던 시간은, 실제로 그의 일상 대부분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림보다 더 먼저, 그는 단지 숨을 제대로 쉬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치료와 재활이 조금씩 효과를 보이면서, 그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호흡 재교육을 시작했다. 일정한 리듬으로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연습, 얕은 호흡을 피하고 폐의 하부까지 공기를 전달하는 방법, 과호흡을 방지하기 위한 완급 조절 등이 그가 매일 반복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정은 언뜻 보면 예술과 무관한 의료 행위처럼 보이지만, 그에게는 일종의 “몸으로 하는 명상”과도 같았다. 호흡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니, 잡념이 줄어들고 현재의 감각에 더 민감해졌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몸의 변화는 이후 그의 작품 세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는 예전과 같은 대작 중심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상대적으로 작은 화면과 간결한 구성을 선택했다. 이는 체력적 한계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동시에 의식적인 미학적 결정이었다. 짧은 호흡 안에 완결될 수 있는 선과 면, 과도한 힘을 요구하지 않는 색 면 배치, 작업 중간중간 휴식을 고려한 단계적 구성 등이 그의 회화에는 새로운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호흡’은 생리적 기능을 넘어, 화면 구조를 지배하는 미학적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화면의 여백은 숨 쉴 공간이 되었고, 색채 사이의 간격은 들숨과 날숨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장치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변화를 보면, 질병이 반드시 예술을 파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병이 가져오는 손실과 고통은 누구도 미화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떤 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