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몸’이 쓰는 새로운 무용 언어
제2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매해 동시대 공연예술의 경향을 압축해 보여주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올해는 “서로 다른 몸이 발레의 동작을 새로 쓴다”라는 문장이 상징하듯, 전통적인 발레 문법을 해체하고 각기 다른 신체, 다른 출신과 훈련 배경을 지닌 무용수들이 하나의 작품을 함께 재구성하는 시도가 두드러진다.
균질한 신체를 전제로 삼았던 고전 발레의 미학을 넘어, 장애와 비장애, 젠더, 인종, 나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몸들이 동등한 예술적 주체로 서는 장면이 SPAF의 여러 무대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공연예술계 전반의 트렌드, 즉 ‘다양성과 포용성’(Diversity & Inclusion) 논의와 맞닿아 있다.
과거에는 발레단 입단 조건 자체가 체격, 다리 길이, 유연성 등 특정 기준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었던 반면, 최근에는 신체적 차이가 오히려 안무의 출발점이자 미학적 자원이 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SPAF는 이 국제적 움직임을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는 플랫폼이자, 동시에 한국 창작자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이 흐름에 응답하는 장을 제공한다.
특히 “서로 다른 몸이 발레의 동작을 새로 쓴다”는 표현은, 익숙한 발레의 어휘를 전복하는 안무 전략을 잘 보여준다.
기존에는 팔과 다리의 각도, 회전의 축, 도약의 높이가 ‘정답’처럼 규정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안무가가 이를 완전히 해체해 각자의 몸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동작을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발레의 상징이던 포인 동작, 회전, 점프는 기존의 미와는 다른 서사, 다른 감정을 담은 몸짓으로 변주되며, 관객은 “발레”라는 장르 정의 자체를 다시 묻게 된다.
관객 입장에서 이러한 무대는 단순히 새로운 움직임을 ‘구경’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받아들였던 ‘미의 기준’을 점검하게 만든다.
높이 뛰지 못하는 몸, 선이 곧지 않은 몸, 속도가 느린 몸도 저마다의 호흡과 리듬으로 공간을 채우면서,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이 춤으로 가시화된다.
일부 관객은 여전히 고전 발레의 정제된 형식을 선호할 수 있지만, 차이를 아름다움의 결핍이 아니라 확장의 계기로 바라보는 시각 역시 SPAF의 현장에서 점차 힘을 얻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발레를 떠올릴 때 자연스레 떠오르던 ‘완벽한 몸’의 이미지가 이처럼 균열되는 과정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기교를 넘어, 각자의 몸이 품은 서사가 중요해지는 공연을 보다 보면, 결국 무용이란 특정 기준에 맞춘 표준 몸의 예술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몸의 존재 방식을 기록하는 예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언어로 나누는 한강의 ‘문장’
“프랑스와 한국 배우가 각자의 언어로 한강의 문장을 나눈다”는 설정은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특히 주목되는 장면이다.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한강의 텍스트가 서로 다른 언어, 서로 다른 발성,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을 지닌 배우들의 입을 통해 공연 무대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를 통해 SPAF는 문학과 연극, 번역과 공연 사이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실험을 선보이며 국제공동제작이 가진 가능성을 입증한다.
한강의 문장은 섬세한 감정선, 응축된 이미지, 빈틈 많은 여백으로 유명하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상실과 폭력, 기억과 치유의 과정은 한국 사회의 구체적 맥락 위에 있지만, 동시에 보편적인 인간 경험과 맞닿아 있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SPAF 무대에서 이 문장은 프랑스 배우의 프랑스어와 한국 배우의 한국어, 그리고 몸짓과 조명, 사운드 디자인을 매개로 또 한 번 다른 층위를 얻는다.
공연 형식상 두 나라의 배우는 동일한 한 대목을 서로 다른 언어로 번갈아 낭독하거나, 하나의 장면을 이중 언어로 병치하는 방식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때 관객은 자막과 배우의 발성, 리듬을 동시에 따라가야 하기에, 일반적인 일어설기–앉기–감정이입의 수동적 관람에서 벗어나 보다 능동적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는 관객’이 된다.
한국어 대사에 익숙한 관객도, 프랑스어로 발화될 때 발생하는 억양과 간격의 차이를 통해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른 감정선을 띠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된다.
이 다언어 무대의 중심에는 ‘번역’이라는 행위가 있다.
전통적으로 번역은 문학 텍스트를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으로 이해되었지만, SPAF의 현장에서는 번역이 무대 전체의 드라마투르기로 확장된다.
한강의 문장이 프랑스어로 발화되는 순간, 언어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호흡, 시선, 신체의 긴장, 무대 공간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함께 재구성되기 때문이다.
관객과 평론가 사이에서는 이러한 이중 언어 무대가 과연 몰입을 돕는지, 혹은 감정의 흐름을 분절시키는지에 대한 논쟁도 존재한다.
하지만 SPAF는 바로 그 ‘불편함’과 ‘낯섦’을 관객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를 요청한다.
문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배우의 시선, 멈칫하는 침묵, 떨리는 손동작 등을 통해 의미가 여전히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어를 넘어서는 공연예술의 힘을 새삼 상기시킨다.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다언어가 뒤섞인 무대가,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는 도시의 풍경과 더 가깝다고 느껴진다.
지하철, 거리, 카페 곳곳에서 들려오는 여러 언어의 파편들이 무대 위에서 예술적 구조를 갖추고 하나의 서사를 빚어내는 과정은, 현대 공연예술이 현실과 만나 작동하는 흥미로운 방식이라 생각한다.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는 국제공연예술의 현재
제2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서로 다른 음들이 하나의 화음을 이룬다”는 표현처럼, 장르와 언어, 국가와 신체 조건이 다른 예술가들이 하나의 무대에서 조우하는 국제 페스티벌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 일대 공연장 등 도심 곳곳이 SPAF의 무대가 되며, 관객은 이 공간들을 오가며 다양한 작품을 관람한다.
공연예술이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동시대 사회를 사유하고 질문을 던지는 장이라는 사실이 한 도시의 시간과 공간 속에 밀도 있게 배치되는 셈이다.
SPAF의 프로그램은 연극, 무용, 음악극, 퍼포먼스를 망라한다.
올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제공동제작과 해외 초청작의 비중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의 극단과 안무가들이 참여하며, 한국 창작자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거나 각자의 사회적 이슈를 공유하는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외국 작품을 수입한다’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해외 레지던시, 공동 리서치, 극작가와 안무가의 워크숍 등 다양한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SPAF는 장기적인 협업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 공연예술이 국제 무대에서 고립되지 않고, 서로 다른 예술 생태계와 연동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페스티벌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다.
관객 경험 측면에서도 SPAF는 단발성 관람을 넘어, 페스티벌 기간 내내 ‘축제의 동선’을 따라 공연을 연속적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된다.
서로 다른 작품을 연달아 보다 보면, 무심코 지나쳤던 공통된 문제의식이나 형식적 실험이 불현듯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장르를 가로지르는 이 흐름 속에서, 앞서 언급한 “서로 다른 몸”, “한강의 문장”, “이중 언어 무대” 같은 키워드들이 서로 교차하며 SPAF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한 무용 작품에서 경험한 비정형의 신체 미학이, 다른 연극 작품의 장애 서사와 맞물려 새로운 감정선을 만들어내거나, 다언어 공연을 본 후에는 해외 초청작의 움직임 마저도 하나의 ‘언어’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처럼 각각의 무대는 독립된 작품이면서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진행되는 하나의 거대한 집단 경험의 일부이기도 하다.
관객은 SPAF를 통해, 예술을 보는 행위 자체가 자신의 관점과 언어를 확장해 나가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물론 국제페스티벌이 가진 과제도 분명 존재한다.
언어 장벽과 문화적 맥락의 차이로 인해, 일부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고, 형식 실험이 과도할 경우 관객의 피로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친절함과 난해함은 동시대 공연예술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관습으로 굳어지지 않으려는 증거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SPAF 같은 축제가 ‘정답을 제시하는 무대’가 아니라, 각자에게 다른 질문을 남기는 자리라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하나의 무대를 나와 다음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에, 방금 본 장면을 곱씹으며 스스로 질문을 정리해 보는 경험 자체가 이미 일상과 예술을 잇는 다리처럼 느껴진다.
맺음말: 서로 다른 언어와 몸이 만든 하나의 질문
제26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서로 다른 음들이 하나의 화음을 이루듯, 다양한 몸, 언어, 장르가 한 자리에 모여 동시대 공연예술의 현재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서로 다른 몸이 발레의 동작을 새로 쓰는 무용, 프랑스와 한국 배우가 각자의 언어로 한강의 문장을 나누는 연극, 그리고 국제공동제작이 만들어 내는 다층적인 무대들은, 관객에게 익숙한 기준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감각으로 예술을 마주할 것을 요청한다.
이를 통해 SPAF는 ‘차이’와 ‘번역’, ‘공존’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연예술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하나의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제 관객에게 남은 과제는 단순히 프로그램 정보를 확인하고 표를 예매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어떤 작품을 선택할지, 어느 언어와 어느 몸짓을 마주할지, 그리고 낯선 형식 앞에서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질문을 품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SPAF의 무대를 나선 뒤에도, 각자의 언어로 공연을 이야기하고, 각자의 몸으로 일상의 리듬을 다시 느껴보는 일이야말로 이 축제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관객의 또 다른 응답이 될 것이다.
다음 단계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공식 홈페이지와 프로그램 북을 통해 세부 일정과 작품 정보를 먼저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특히 서로 다른 몸 언어를 탐구하는 무용 작품과 한강의 텍스트를 다루는 연극, 그리고 다언어·국제공동제작 공연들을 우선적으로 체크해 두면, SPAF의 핵심 흐름을 보다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현장에서의 관람 후에는 개인 블로그나 SNS에 감상과 질문을 기록해 두는 것도 좋은데, 이러한 기록은 다음 해 SPAF를 마주할 때 또 다른 관점과 기대를 제공하는 나만의 작은 아카이브가 되어 줄 것이다.